나는 어쩌다 개발자가 되었나

Published : August 2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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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4년전에 호주에 왔다. 경영, 회계 전공이었던 나는 전공을 살려 회계직으로 2년간 근무하다가, 독학으로 프로그래밍과 머신러닝을 배워 작년에 Data scientist로서 IT 분야에서의 첫 커리어를 시작했다. 전공과 경력을 버리고 나는 어쩌다가 개발자라는 전혀 다른 길을 선택했을까.

컴퓨터에 눈을 뜨다

9살 때, 그 당시엔 생소했던 컴퓨터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워드프로세서, 정보처리기능사, 정보기기운용기능사 자격증을 따면서, 학교에선 모든 선생님들이 컴퓨터를 다루는 도움이 필요하거나 문제가 생길때면 나부터 찾았고, 방과 후 친구들이 다 집으로 돌아간 텅 빈 교실에서 나이 드신 담임선생님의 문서 작업을 도와주다가 선생님과 같이 퇴근하곤 했다. 자연스럽게 선생님들과 친해졌고 노동의 보상으로 간식이나 문제집을 받기도 했다. 타자를 많이 치다보니 자연스레 키보드 위치를 외워 타자가 빨라졌고, 교내에서 열리는 타자대회에서 항상 1등을 하면서 나는 학교에서 "컴퓨터 잘 하는 애"로 불렸다.

정보처리기능사 실기시험 준비를 하면서 처음으로 알고리즘을 배웠다. 자세히는 생각이 안 나지만, 간단한 알고리즘을 Flowchart로 그리고 비주얼 베이직이라는 프로그램으로 구현하는 시험이었는데, 내가 짠 코드대로 아웃풋이 나왔을 때의 그 짜릿함이 수학문제 풀 때의 희열과 비슷했다. 내가 수학을 얼마나 좋아했냐면, 수학학원에서 새로 문제집을 주면 그걸 빨리 풀고 싶어서 집에 오자마자 방에 틀어박혀 하루만에 문제집을 다 풀어냈었다. 다음날 다 푼 문제집을 학원에 다시 가져갔을때 선생님들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그정도로 좋아했던 수학과 프로그래밍이 알게 모르게 비슷하다고 생각했고, 그때 당시에는 "개발자"라는 단어보다 흔히 알려졌던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방황의 시작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집안 사정으로 학교 근처 자취방에서 혼자 살게 됐다. 야자가 끝나고 컴컴한 자취방에 들어와 심심해서 매일 인터넷에 직업들을 검색했다. 나는 꿈도 많고 야망도 커서 매일매일 하고 싶은 것이 바뀌었다. 워크넷 웹사이트에서 적성검사를 해서 적합 직업군 결과로 나온 직업들을 하나하나 찾아보며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해봤다. 그러다가 수학을 좋아하니 숫자 다루는 직업이 잘 맞겠다 싶어 회계사라는 직업을 선택했고, 회계학과는 보통 경영학부 안에 속해있기 때문에 경영학을 전공하기 위해 문과로 진학했다.

문과로 진학하긴 했지만, 컴퓨터를 다룰 때면 너무 재밌고 오래전이긴 하지만 코딩의 짜릿함이 계속 생각났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다음날 담임선생님께 상담을 했다.

"저 컴퓨터공학과로 교차지원(문과생이 이과로 지원하는 것)하고 싶어요."

담임선생님은 떨어져 살던 엄마에게 전화해서

"정화가 뜬금없이 공대를 가겠대요. 아마 요즘 혼자서 방황을 하며 마음이 들뜬것 같아요. 어머님이 정화 좀 잘 잡아주세요."

그 후로 학교와 집이 전부였던 내 세계의 모든 어른들이 나를 뜯어말렸다. 경영 전공으로 좋은 대학교 갈 수 있는데 왜 교차지원으로 하향 지원 하냐는 게 이유였다. 모두가 프로그래머는 힘든 직업이라고 했고, 인터넷에 검색해봐도 부정적인 의견이 다수였다. 주변에 아는 프로그래머가 있어서 실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것도 아니고, 막연하게 컴퓨터가 좋아서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었던 나는 그런 만류들로 인해 결국 고집을 꺾고 경영학부에 진학하게 된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회계를 처음 배워보니 회계학 자체는 숫자를 다루는거라 재밌었지만, 수학과는 전혀 연관이 없었다. 지루한 건 절대 못 참는 내 성격에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다른 경험을 많이 쌓아보고 싶어 미국에 교환학생도 다녀오고 온갖 재밌어보이는 대외활동이란 대외활동은 다 하다보니 대학교를 7년이나 다녔다.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

미국에 교환학생을 다녀오고 나서부터 또 해외에서 살아보고 싶었고, 그래서 졸업 후 UN과 KOICA 국제기구에서 일하다가 호주에 왔다. 영국에서 국제회계사 자격증의 한 코스로 회계대학원에 입학할 계획이었기에, 호주는 여행할 겸 잠깐 왔는데 시드니가 너무 좋았고, 운좋게도 회계직으로 취업을 해 시드니에 정착하게 되었다.

시드니에서의 첫 2년간은 회계직으로 근무를 했는데, 일을 해보니 생각한 것보다 일이 더 지루했다. 업계 특성상 비효율적인 시스템이나 관행들에 대해 개선안을 내어도 "우린 그냥 이렇게 쭉 해왔어. 바꾸기 귀찮으니 그냥 이대로 해."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실제로 동료들에게 아이디어를 내도 다 이해를 못하고 그냥 하던대로 하자는 문화였다.

그러던 어느날 Brisbane으로 여행을 가게 됐고, 거기서 현직 개발자인 A와 이야기를 하게 됐다.

"너는 왜 회계 쪽을 선택했어?"

"음.. 그냥 수학을 좋아해서 숫자 관련된 일이 하고 싶었어."

"진짜? 그래서 지금 일에 만족해?"

"아니, 완전 지루해.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인것 같긴 한데, 재미없고 따분해. 근데 뭐 어쩌겠어. 거의 지난 10년간 이쪽만 팠는걸. 하기 싫어도 어쩔 수 없지. 나는 이미 늦었어."

"너 아직 20대잖아! 앞으로 니가 그 일을 하면서 살아가야 할 날들이 몇십년이 될지도 모르는데, 남은 몇십년을 그렇게 후회로 살기보다는 지금이라도 니가 진짜 좋아하는 일을 해봐. 나중에 40, 50살이 되어서 포기해야 할 것들이 더 많을 때보다 지금이 더 좋은 기회야."

"근데 나 사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도 잘 모르겠어. 원래는 개발자가 되고 싶었는데, 이미 늦은것 같아. 나는 그쪽 전공도 아니니까."

"하나도 안늦었어. 그리고 개발자 업계에서 요즘엔 학위는 없어도 돼. 프로그래밍 진짜 쉬워. 내가 알려줄께"

A는 바로 그 자리에서 아이패드로 온라인 에디터를 켜서 프로그래밍의 진짜 기초들을 알려줬다. 그렇게 시간가는 줄 모르고 새벽3시까지 변수, 데이터 타입 같은 것들과 원하는 숫자들을 간단한 알고리즘으로 걸러내서 출력하는 것처럼 간단한 것들을 배웠는데 너무너무 재밌었다. 정말 오랜만에 살아있음을 느꼈다. 그동안 죽어지냈던 세포들이 반짝반짝 빛을 내며 살아나는 기분이었다.

여행하러 가서 여행은 뒷전이고 3일내내 프로그래밍만 배웠고, 업무에 복귀하자마자 매일 반복되는 작업 몇개를 엑셀 프로그래밍 수식을 써서 자동화를 시켰다. 그렇게 몇번 하고나니 업무시간이 여유로워졌고, 동료들마다 네 전임자는 항상 엄청 바빠보였는데 너는 어떻게 그렇게 여유로워 보이냐고 물어왔다. 새로운 방식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던 동료들이 하나둘씩 내 방식을 배워서 적용해갔다.

그렇게 퇴근 후 조금씩 프로그래밍을 배우다가, 도무지 속도가 나지 않아 퇴사를 하고 본격적으로 이직 준비를 했다. 처음엔 Python, 프론트엔드 이것저것 조금씩 배워보다가, 수학과 관련된 Data science를 배우기로 마음먹고 전업으로 공부를 해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Data scientist로 취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Data scientist에서 Back-end 개발자로

하지만 Data scientist로 약 1년간 근무를 하다보니, Data science는 언어영역 같았다. 같은 소설, 같은 지문을 보더라도 읽는 이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문학소설과 같은. 내가 좋아했던 코딩이나 개발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던 시기에, 데이터를 다루려면 서버도 다룰 줄 알아야 된다고 해서 배워보던 백엔드가 너무 재밌어서 다시 백엔드를 공부해 백엔드 개발자가 되었다.

데이터 사이언스 자체는 너무 흥미롭고 좋아하는 분야인데, 아직까진 Data scientist라는 직업이 한국에 자리잡지 않아 하는 일이 회사마다 다르다고 들었다. 내가 Data scientist로서 느낀 점은 아마도 내가 일했던 곳에서의 한계였던 것 같아서, 백엔드 개발자로 일하면서도 계속 머신러닝을 꾸준히 공부해보고 싶다.

개발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거의 매일 코딩을 하고, 퇴근 후에도 개발 공부를 해야 할 정도로 정말 배울 것이 많은 것 같다. 그래도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기에 그 어떤 배움보다도 값지고 재밌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릴때부터 하고 싶었던 일을 돌고 돌아 오랜 방황 끝에 하게 돼서 그동안의 시간을 낭비한 것 같아 후회가 될 때도 있었지만,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호주에 왔기 때문에 자연스레 나이 강박에서 벗어나 커리어를 바꿀 용기가 생겼고,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에 대한 확신이 생겼고, 내가 어떻게 커리어를 쌓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그림이 그려졌다.